바르고, 강한 정신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갈수록 육신적으로는 연약 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신적으로 약해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육신의 후패로 인해 사람은 정신이 약해지고 그러므로 삶이 불안 해지고 두려움도 있게 되고 초조 해 지기도 합니다.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육신이 노쇠해 가면 진리로 나의 속사람을 새롭게 해 나가지 않으면 – 성장 시켜 나가지 않으면 신앙적 힘이 약해지고 내면을 강하게 하는 영적 능력이 연약하기 때문에 자연히 정신적으로도 약해 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서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강력히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4:16)
새로워 진다는 것은 “성장 해 간다” 란 말이다. 신앙적, 영적 성숙을 이루어 가도록 진리안에서 나의 속사람을 더욱 굳게 해 나가야 합니다. 새롭게 되고 성장하려면 노력 해야합니다.
그래서 젊을 때도 물론 이거니와 나이가 들수록 신앙의 힘이 더욱 필요하고 진리를 깨닫고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이 더욱 중요합니다. 신앙은 내면의 강한 정신과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을 하게 된 원이이기도 하지만 타락 이후에 이 인간의 나쁜 심성은 더욱 더 강하게 사람들안에서 작용을 합니다.
욕심은 인간이 사람됨을 포기하고 동물적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욕심으로 인하여 인간은 사람됨의 노릇이 아니라 동물 됨의 노릇을 합니다. 욕심은 인간 타락의 근본입니다. 욕심은 인간의 육체적 욕구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적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과(過) 할 때 죄를 범하게 하고 허물을 뒤집어 씌우게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욕심을 3 가지로 이야기 한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삼독인 “탐.진.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라고 한다.
단테 신곡에서 인간의 7가지 욕심을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만, 질투, 색욕, 탐욕, 식탐, 나태, 분노.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모두들 위의 욕심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죄와 허물 속에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인간은 욕심으로 인하여 잡아도 잡아도 또 잡고자 하고,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어 하고, 올라가도 올라가도 또 올라가고자 하고, 채워도 채워도 더 채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 생기는 모든 문제들은 다 이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이 여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텅빈 충만에 이르려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참 자아를 찾아 “참 나됨”의 삶을 살아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이나 “구원 받음” 이란 다 이 참 나를 회복 하여 인간의 본연의 모습으로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과(過) — 욕심 == 문제 발생
실제 적정선 —————————-
부족 — 게으름, 등한시하는 것, 무시하는 것, 회피 등. ==문제 발생
인간사 모든 이치: 건강, 사업, 인간관계, 가족, 운전, 운동 등에서 문제는 적정선에서 벗어나 과하게 행동을 하거나 부족하게 행동을 할 때 일어납니다.
적정선의 기준은? 그리고 어떻게 적정선에 유지 할 수 있을까?
단 한가지입니다. 진리 안에 거해야 한다.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 과하거나 부족할 때 그것을 완급 조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과하거나 부족함을 알고, 과할 때 절제 할 수 있는 내적인 힘과 부족할 때 적정선으로 끌어 올리고자 하는 의지가 그것이 그 사람의 힘=능력입니다.
이 능력과 힘은 진리 안에서 만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런 삶을 살게 축복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능력과 힘을 입어 세상을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 무지- 여기의 무지는 단순이 무엇인가 모르고 어리석은 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나고, 많은 것을 가졌고, 권세가 있고, 종교심이 많은 마침 바리세인들이나 서기관 율법사들처럼 그런 류의 사람들이다.
고린도전서8장2절 말씀을 생각 해 봅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이 말씀을 자신에 적용하여 한번 깊이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무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빌립보서3:8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질문: 위 말씀에서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고 합니까?
(2) 무지 중에 가장 심한 무지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수치와 두려움으로 살아가고 그것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하여 자신을 숨기거나 가면을 쓴다. 그러므로 눈이 어두어져서 /밝아져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예) 누가복음23장34절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질문: “저희를”은 누구인가?
사람들은 타락(허물과 죄)으로 인하여 자신을 숨기고 가리는(두렵고 수치스러움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과대하게 나타내려고 하거나 또는 자신을 과소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진짜 자신을 잃어버리고 거짓 자신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무엇인가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자신이 잘났다고 여기고 살지만 실지로 그렇지 못하다. 왜 자신을 잃어버리고 거짓 자기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예수님을 더 알고, 따라야 하는가? 왜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가?
가장 현명한 자는 ( 자기 자신을 아는 ) 자이다.
신앙은 ( 잃어버린 참 자아를) 찾은 것이다.
예수님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음이 단순이 육신적으로 죽은 후에 천국에 가다고만 생각을 하고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이 바르게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로서 그렇게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 말을 할 수 있다.
구원 받았다는 것은 참 자아 회복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과 끊어졌든 교제를 하나님의 아들이 됨으로 회복되고, 나 중심적이고 세상 중심적인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참 자아로 회복이 되어 새롭게 거둡나는 것이다.
신앙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고, 알고(더 깊이 알아가고) 그래서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에스라서는BC538년 고레스의 조서(칙령)에 따라 BC537에 스룹바벨의 인도아래 1차 귀환이 이뤄진 후 BC536년 성전 재건이 시작되고, BC534년부터 BC520년까지 중단, 다시 재건(학개/스가랴선지자의 독려)하여 BC516년에 완성되기까지(1장부터 6장까지)와, BC467년(1차 귀환과 81년 차이) 에스라의 지도하에 2차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개혁운동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 원년에 조서를 공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환하여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고레스 왕이 느부갓네살이 성전에서 가져온 5400의 기명들을 다 돌려주고 세스바살(스룹바벨)이 그 기명들을 가지고 귀환합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와 다른 지파의 일부와 레위 사람들 약 5만명 정도가 돌아왔습니다.
도착한 해 7월에 예루살렘에 다 모여 단을 만들고 하나님께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한대로 제물을 드립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후 2년 2월에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합니다. (이 성전은BC 586년에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면서 크게 파손됐습니다.)
전 지대를 놓을 때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찬송하며 감사를 드립니다.첫 성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통곡하며 기뻐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을 시기하는 대적들이 성전 건축 소식을 듣고 유다 백성들의 손을 약하게 하며 성전 건축을 방해합니다.
이들은 다리오 왕의 아들인 아하수에로 왕(에스더 시대의 왕)에게 조서를 써서 보낼 정도로 방해합니다. 대적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글을 올려 “성읍과 성곽 건축을 놔두면 그들은 세금을 바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조서를 보냅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답장을 내려 “성곽 건축을 금하라”고 말합니다.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유다 사람들에게 역사를 그치게 합니다. (하나님의 전 역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 이 년까지 그치게 됩니다.)
다리오 왕 제 이년에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15-16년 동안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의 역사를 다시 시작할 것을 재촉합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도움으로 전 건축하기를 시작합니다. 반대하는 무리들의 대적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역사는 진행됩니다.
대적자들이 다시 다리오 왕에게 글을 올립니다. 그 내용은 “성전 건축과 성곽 건축에 형통하기에 누가 허락없이 역사를 진행하는가 묻자, 하나님의 종으로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며, 고레스가 본래 여호와의 전에 있던 기명들을 가지고 가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조서대로 건축하는 것이라고 답하는데, 왕이시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린 적이 있는지 알아봐주소서”하는 내용입니다.
다리오 왕이 조사하여보니 고레스 왕이 성전 건축의 크기까지 지정 (고 60규빗, 광 60규빗)해주고, 그 경비까지 지원할 것과, 기명들을 돌려보내 그 성전에 위치할 것을 기록한 내용을 확인합니다. 다리오는 총독 닷드내 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들에게 “성전 건축을 막지 말 것, 세금까지 그들에게 지원할 것, 수용물을 그 곳의 제사장에게 주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도록 할 것, 이 명령을 어기는 자를 엄히 다스릴 것, 이 조서를 신속히 행할 것”라고 전합니다. 조서가 내려지자 총독 등 사람들이 신속히 준행하고,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권면함으로 성전 건축이 형통해집니다.
드디어 다리오 왕 6년에 성전 건축을 마칩니다.
성전 건축을 마치고,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봉헌식을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거행합니다. 잡혔던 자들이 성전 건축의 기쁨과 함께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킵니다.
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
6장까지가 스룹바벨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유월절을 지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7장부터는 1차 귀환이 있은지 58년 후 에스라가 2차 귀환을 하는 과정부터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아닥사스다가 왕으로 있을 때 아론과 엘르아살, 사독의 자손인 에스라,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요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어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로서 아닥사스다 왕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 등 2차 귀환자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오개월 걸려 도착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가 내린 조서의 내용은 “예루살렘으로 갈 뜻이 있는 자는 다 데리고 가고 하나님께 왕과 방백들, 백성과 제사장들이 드리는 예물인 은 금을 가지고 가서 그 돈으로 제물을 사서 하나님의 단에 드리라. 나머지 은 금은 선히 여기는 일에 잘 써라. 네게 준 기명들은 성전에서 잘 쓰고,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은 다 가져가거라. 은, 밀, 포도주, 기름은 정한 수량까지, 소금은 원하는대로 가져가도록 하라. 성전을 위하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다 하라.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세금을 걷지말라. 유사와 재판관을 삼고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어기는 자는 벌에 따라 처리하라.” 였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께 받은 은혜를 말합니다.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남자의 수로 1,773명을 명시합니다.
에스라가 바벨론을 떠난 지 9일 만에 아하와 강가에 삼일간 머무릅니다. 함께 떠나온 무리 중에서 레위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한 사람도 보이지 않자 지혜로운 사람을 보내 주변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을 섬길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옵니다.
에스라가 그곳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여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스라엘까지 가는 동안 호위할 군대를 왕에게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간구함을 받으십니다.
제사장 중 12인을 택하여 예물과 기명들을 다 하나님의 전에 책임지고 드리도록 하며, 예루살렘에 잘 도착한 후에 그렇게 합니다.
에스라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이방 족속과 혼인을 주저하지 않으면서 죄를 지었다는 소리를 듣고 애통하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죄악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과 나라를 잃고 이방인의 노예를 지내다가 이제 은총을 받아 돌아왔더니 다시 주의 계명을 배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하며 기도합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통곡하매 이스라엘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입니다. 이때 스가냐라는 사람이 일어나 “이방 여자를 다 내어 보내고 율법을 제대로 지키기로 하였으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하고 용기를 부어 줍니다. 에스라가 포로되었던 자들을 삼일 내에 모이게 하고 선포하기를 죄를 자복하고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고 합니다. (요나단과 야스야와 므술람과 삽브대 등 몇몇이 반대합니다. )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의 명단을 약 3개월 정도 조사하는 일을 합니다. 112명의 명단이 제시되었습니다.